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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내조와 외조, 그리고 협조

“너 이렇게 나돌아다녀도, 네 남편이 뭐라고 하지 않아?” “무슨 뜻이야?” “너 집에 붙어 있는 날이 없는 것 같아서” “나는 붙박이장이 아닙니다요”   이런 대화를 한 친구와 나는 중, 고교 6년, 또 과는 다르지만 대학도 같은 학교에 다녔다. 그러다 고교 동문회 동아리 활동 중에 다시 만나게 됐다. 노래하고 싶은 마음은 많았지만 시간을 맞출 수 없어 합창단원이 되지 못하다가 큰마음 먹고 처음으로 출석한 날, 나를 반겨주던 친구는 한마디를 더 했다.     “네 남편의 외조가 크다.”    외조라니!     미국사회에 ‘외조’와 ‘내조’의 개념은 없다. 하지만 한인 1세들은 여전히 한국적 사고를 갖고 있다 보니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국립국어원이 운영하는 ‘온라인 가나다’라는 사이트에 외조, 내조라는 단어를 남자, 여자라는 틀로 바꿔 올라왔던 글이 생각난다. 이 글에 대해 한 네티즌이 현대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적하자 ‘온라인 가나다’ 측은 다음과 같은 답글을 썼다. ‘예부터 바깥, 외(外)를 포함하는 단어는 보통 남편의 역할이나 위치를, 안, 내(內)를 포함하는 단어는 아내의 역할이나 위치 등을 의미해 왔습니다. 과거가 묻어 있는 단어들로 볼 수 있지만, 이러한 단어를 해당 의미로 사용하고 있어, 그 쓰임을 인정하여 사전에 담은 것입니다’. 내용은 달라졌지만 아직 사용하는 단어니 알아서 하라는 소리 같다.   그 표현대로라면, ‘외(外)’란 밖이라는 뜻으로 남편의 역할, 위치를 뜻하고 ‘외조’는 남편이 아내를 돕는다는 뜻이 된다. 이는 여성의 사회활동을 이례적이라고 단정하고, 여성의 정체성을 ‘집 안’으로 국한하는 것이다.      미국에 사는 이민자들에게 내조, 외조란 더 맞지 않는 개념이다. 카말라 해리스가 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때, 그리고 흑인 여성인 케탄지 브라운 잭슨이 대법관으로 인준되었을 때, 미국 미디어는 남편들의 외조가 있었다는 말을 쓰지 않았다.   시대적, 역사적 의미를 강조하고, 부부 관련 이야기를 올렸지만, 내조, 외조로 구분하지는 않았다. 남편들은 이미 젊었을 때부터 아내의 능력을  알았고, 두 남자는 그들이 응원한 아내의 성공을 기뻐하고 자랑할 뿐이었다. 멋있게 보였다.     두 여성의 성공이 본인의 노력으로만 이루어졌다고 볼 수는 없다. 남편의 응원이 있었고 부모의 역할도 컸다. 그들은 부모들이 다져온 삶의 기반 위에서 성실하게 자신의 길을 갔던 것 같다. 이민 1세인 부통령의 부모와 노예 5대 후손이었던 대법관의 아버지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자식들과 함께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었던 사람들이었다. 잭슨 대법관의 명언 중에 마음에 와 닿는 내용이 있다. ‘인종 차별이 우리를 분리했던 때부터, 흑인 여성이 대법관이 될 때까지는 한 세대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 말은 미국에는 쉼 없이 투쟁한 노예 후손과 이민자들이 있었고, 과감한 개혁에 앞장선 선구자가 있었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은 어떤가? 2009년 이후 여학생의 대학 진학률이 남학생보다 높지만, 여전히 전문직의 여성 비율은 남성보다 낮다. 또 2016년 한국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일을 할 수 있는 연령대 남성의 74.7%, 여성의 52.7%가 직업을 가진 것으로 나타나 20%포인트 이상 격차가 난다. 내조, 외조라는 단어를 배척하는 젊은이들이 있는 나라, 여왕이 있었던 나라, 미국은 하지 못했던 여성 대통령을 배출했던 나라가 한국이다. 딸과 며느리의 사회활동을 위해서 사위, 아들, 그리고 아버지, 엄마가 함께 노력한다면, 시간이 걸려도 전문직의 여성 비율은 높아질 것으로 믿는다.     긴 세월 남편과 나는 서로를 응원해주는 협조자(協助者)였다. 가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동조(同調)가 아닌 협조를 하면서 살아왔다. 동조란 남의 주장에 자기의 의견을 일치시키거나 보조를 맞춘다는 뜻이고, 협조(協助)에서 쓰이는 조(助)는 ‘보조적인’ 또는 ‘버금간다’는 의미다.   산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다고 새삼스레 생각해 본다. 그러나 서로 협조하고 장점을 살려주면서 함께 걸을 때 세상은 살만한 가치가 있게 된다는 것을 믿는다. 류 모니카 / 종양방사선학 전문의·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기고 내조 외조 내조 외조로 여성 비율 여성 대통령

2022-09-14

[J네트워크] 유리천장은 아직 깨지지 않았다

시크한 은발, 무릎 위 길이의 스커트, 구릿빛 피부, 그와 동시에 지적이고 우아한 목소리의 소유자. 지난 16일 프랑스 총리직에 취임한 엘리사베트 보른의 모습이다.     올해 61세로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그 만의 매력과 여유가 묻어났다. 보른의 지명은 지난달 재선에 성공한 마크롱 대통령의 여성 총리 지명에 대한 오랜 약속이기도 했다.   1987년 공무원 생활을 시작해 교통·환경·노동 등 여러 장관직까지 성공적으로 수행해온 보른 총리는 취임식에서 특별히 여성의 위상에 대한 언급을 했다.     “나의 임명을 소녀들에게 헌정하고 싶습니다. 꿈을 믿으라고, 우리 사회에서 그 어떤 것도 여성들의 지위를 위한 투쟁을 막아서는 안됩니다.”   보른이 프랑스의 첫 여성 총리는 아니다. 1991년 에디트 크레송이 최초로 취임한 바 있으나 부정 논란 끝에 1년을 넘기지 못했다. 그렇지만 30년 만에 맞는 이번 두 번째 여성 총리에 대해 프랑스 사회가 거는 기대와 의미는 크다.     총리 임명 며칠 후 프랑스 대통령실 엘리제궁은 새 내각 인선을 발표했다. 1기 내각 장관들과 새로운 지명자들로 적절히 구성된 새 정부는 총리를 포함해 남성 14명, 여성 14명의 장관들로 이루어져 성비 균형을 맞춘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혁명의 나라 프랑스에 여성 대통령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이웃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이 장기 집권하고 북구 유럽 국가들이 여성 지도자들을 계속 배출하는데도 파리의 권좌는 남성들만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올해 4월 실시된 대선에서는 조짐이 달랐다. 주요 보수와 진보당들이 여성 후보자를 선출했고, 마크롱 대통령과 결선투표까지 붙었던 극우 국민연합의 마린 르 펜 후보도 여성이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프랑스 정치권은 아직 남성 위주이자 성차별적이라는 이유로 비판 받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처럼 비록 정치 지도자의 의지가 아무리 강해도 여성들의 ‘유리천장’에 대한 도전은 여전히 역부족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19명의 국무위원 중 여성은 3명뿐이다. 지난 21일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한 외신기자로부터 내각의 여성 비율이 낮다는 지적을 받고 순간 멈칫했다. 대외적으론 그야말로 요즘 ‘젤 잘 나가’는 나라의 숨기고 싶은 민낯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다행인 것은 대통령의 그 후 입장이다. 참모의 설명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며 “공직 인사에서 여성에게 과감한 기회를 부여하도록 노력하겠다”였다. 자신의 부족함을 쿨하게 시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능력 있는 여성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기용하는 변화를 기대한다. 안착히 / 한국 중앙일보 글로벌협력팀장J네트워크 유리천장 프랑스 대통령실 여성 대통령 프랑스 총리직

2022-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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